홈> 아하!한겨레> 이주의 칼럼

[Vol.519]
노벨상과 공범들





“연령에 비하여 말하면 어디로 보든지 17, 8 내지 20 전후의 여자가 아니라 30 내외의 중년의 여자 라 하는 것이 가(可)하고 피부에 비하여 말하면 남 자를 그다지 많이 알지 못하는 기름기 있고 윤택 하고 보드랍고 푹신푹신한 피부라고 하느니보다 도 오히려 육욕에 겉으론 윤택하지 못한, 지방질 은 거의 다 말라 없어진 피폐하고 황량한 피부가 겨우 화장분의 마술에 가리워서 나머지 생명을 북돋워가는 그러한 피부라고 말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거친 피부를 가리어주고 있는 한 겹의 얇 은 분을 벗겨버리면 그 아래에는 주름살 진 열(熱) 없는 살가죽이 드러난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의 시(詩)도 한 겹의 가냘픈 화장이 있다.” 김기진이 1924년 ‘김명순씨에 대한 공개장’이라 는 제목으로 <신여성>을 통해 김명순의 시를 비판 한 글이다. 김명순의 시를 화장한 늙은 여자에 비 유한 이 글은 늙은 여자, 그래 봐야 30세 내외의 여자에 대한 비하와 경멸의 시선으로 가득하다. 여성의 젊음과 늙음을 순수와 추함으로 빗대는 문학인의 버르장머리는 스스로 반성할 줄 모른 다. 더불어 여자에게 ‘남자를 많이 알지 못하는’ 상 태는 순수의 세계다. 남성 예술가가 여성에게 지 분거리는 추태와 폭력은 예술가의 기행이 되지만, ‘남자를 아는’ 여성의 ‘육욕’은 추하다. 그렇기에 연 애하는 여성이 성폭력 범죄자보다 더 ‘더러운’ 평 판을 받아왔다.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성범죄 피해를 겪은 이 들의 목소리가 꾸준히 쏟아지고 있다. 원로 시인 의 성추행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두고 한쪽에서는 “정치적, 도덕적인 올바름이 지배하는 멸균 공간” 을 낳을까 봐 우려한다.(<중앙일보> 2월9일자) 아 마 성추행을 유산균 정도로 생각하나 보다. 몸에 필요한 균처럼 술과 여자를 남성의 창작에 필요한 유산균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개인의 폭로를 통해서 겨우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사회라면 그만큼 제도가 엉망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이 미 사회의 몸체가 감염으로 썩어가는 줄도 모르 고 ‘멸균’을 걱정한다. ‘한국 문학의 상징’을 걱정하며 마치 맡겨둔 노 벨상을 돌려받지 못하기라도 할 것처럼 두려워하 는 목소리는 역설적으로 이 사회에 성범죄가 어떻 게 안전하게 뿌리내리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우 상을 지키느라 사회의 통증을 외면하는 문학의 언어야말로 이 사회를 병들게 한다.

성적 착취를 예술이라는 방어막 안에서 쌓아온 이 폐단의 악 취를 맡지 못한다면 이미 함께 썩었다는 뜻이다. 성범죄를 격려하고 가해자를 위로하는 사람들, 바 로 그들이 착취의 구조를 세우고 있는 기둥이다. <연애담>으로 호평받았던 이현주 감독은 성폭 력 유죄 판결로 수상 취소와 함께 한국영화감독 조합에서 제명되었다. 이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이현주 감독과 동일 한 처벌을 남성 창작자가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여성의 경우 창작자의 윤리와 작품의 성취가 분리되지 않는다. 반면 갖은 추태에도 ‘그 래도 능력은 있다’며 악착같이 살아남는 행운은 오직 남성에게만 주어진다. 이렇게 다르게 적용되 는 정의의 실체에 대해서는 분명히 생각해볼 필요 가 있다. 민주화 투쟁을 다룬 영화 <1987>의 영어제목은 ‘1987: When the Day Comes’다. 그날이 오면. 심훈 의 시에서 비롯된 이 ‘그날이 오면’은 꾸준히 역사 적 진보에 대한 염원을 담은 표현으로 활용되고 있 다. 오랫동안 쌓이면서 단단하 게 굳어진 폐단을 그날이 와 도 치우려 하지 않는다면 그 날은 과연 누구의, 누구에 의 한, 누구를 위한 ‘그날’일까.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한겨레> 2018-02-14, 칼럼

 

읽기 도우미




“노털상 후보 En” 최영미 시 ‘괴물’ 문단 내 미투 재점화





최영미 시인이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발표한 시 ‘괴물’이 에스엔에스상에서 다시 회자되면서 ‘문단 내 성폭력’ 논란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 다. 당사자로 지목된 원로 시인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30년 전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당시 후배 문인을 격려한다는 취지에서 한 행동이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밝혔다.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에서는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는 것 으로 유명하며 “100권의 시집을 펴낸” “삼십년 선배” “En선생” 으로 등장하는 문단 원로가 “나”의 정장 상의를 구겨뜨리고 “유 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등의 장면이 묘사된다.

시의 마지막은 이러하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 아야 하나” 이 시가 지난 4일 트위터 ‘문단-내-성폭력 아카이브’에 오르 자 6일 오후 현재까지 1500회 가까이 리트위트되고 페이스북 등 다른 에스엔에스 상에서도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다. 아카이 브는 “문학이란 이름으로 입냄새 술냄새 담배 쩔은내 풍기는 역 겨운 입들. 계속해서 다양한 폭로와 논의와 담론이 나와야 한다. 적어도 처벌이나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 도록. 최영미 시인님 고맙습니다”라며 문단 성폭력 고발 운동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당사자로 지목된 원로 시인은 6일 <한겨레>와 통 화에서 “아마도 30여년 전 어느 출판사 송년회였던 것 같은데, 여러 문인들이 같이 있는 공개된 자리였고, 술 먹고 격려도 하느 라 손목도 잡고 했던 것 같다”며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오늘날 에 비추어 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뉘우친 다”고 말했다. 최영미 시인은 <한겨레>와 통화에서 “제 시를 문학작품으로 봐주시기 바란다. 문단과 사회에 만연한 우상 숭배를 풍자한 시 다. 지금은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트위터 ‘문단-내-성폭력 아카이브’ 계정과 페이스북 등 에스엔에스에서는 또 다른 문인들의 성폭력에 관한 주장과 실 명이 올라오면서 2016년 문단을 달구었던 문단 성폭력 고발 운 동이 재연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한겨레> 2018-02-06, 기사

 
자유롭게 써봐요
글쓰기는 마이페이지의 내 글 모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집에서스스로] 1. 이 글의 열쇳말을 찾아 써 보세요.
공개 비공개 | 글자수 : 0
[집에서스스로] 2. 글쓴이가 “이렇게 다르게 적용되는 정의의 실체에 대해서는 분명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 근거가 무엇인지 100자 안팎으로 써 보세요.
공개 비공개 | 글자수 : 0
[집에서스스로] 3. 이 글은 200자 안팎으로 요약해보세요
공개 비공개 | 글자수 : 0
[집에서스스로] 4. ‘#미투운동’을 주제로 여러분의 생각이 담긴 글을 400자 안팎으로 써 보세요.
공개 비공개 | 글자수 : 0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