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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와 편견을 벗으려면 ‘과학’과 친구해라

열쇳말 | 과학





과학자가 아닌 독자를 대상으로 쓴 과학책 중 한 권을 꼽으라면 <지식의 원전>을 들겠다. 저자 존 캐리는 영국의 문학 비평가이자 옥스퍼드 대학교 명예교수다. 2005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초대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다. 문학교수이며 비평가인 그가 과학 분야 원전을 모아 책을 펴낸 이유는 무엇일까. 제법 긴 서문에 해답이 들어 있다.

존 캐리는 인문학을 전공하는 영국의 똑똑한 학생들이 과학 분야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무지와 편견에서 벗어나려면 과학문헌을 읽어야 한다고, 과학책을 읽으며 스스로 깨닫는 순간의 희열을 즐기라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읽어야 할까. 그가 고르고 정돈한 목록이 <지식의 원전>이다.

르네상스부터 현대까지 망라한 100명이 넘는 지성과, 그들의 저서 혹은 그들 자신을 주제로 삼은 글이 선별됐다. 이 중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노트북>, 갈릴레이 갈릴레오의 <시데레우스 눈치우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마이클 패러데이의 <양초 한 자루에 담긴 화학이야기> 등 국역된 것도 있지만, 이래즈머스 다윈의 <식물원>, 스티븐 제이 굴드의 <암탉의 이빨과 말의 발가락>,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단어 망> 등 익숙한 저자의 미번역본 또한 적지 않다.

존 캐리는 인문학과 과학의 경계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그가 고른 원전들을 읽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두 분야가 상당히 얽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마이클 패러데이의 ‘촛불에 대하여’는 양초의 연소와 생명체 내의 연소를 비교 설명한 글(강의록)이다. 패러데이는 강의를 마무리하며 학생들에게 양초의 불꽃처럼 인류를 위해 헌신하기를 당부한다. 과학적 분석은 유비(類比)의 재료가 되고, 그로써 독자(청중)의 가슴에 더 진한 여운을 남긴다.

이래즈머스 다윈(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의사·발명가·시인)은 제니스타 꽃이 열 개의 수술과 한 개의 암술을 갖고 있으며, 그 중 두 개가 유독 높이 서있음을 시적으로 묘사했다.

 “아름답게도 피었구나, 산금양 그늘의 제니스타 /사랑에 빠진 열 명의 형제들이 그 콧대 높은 아가씨에게 구애를 하네 / 두 명의 기사가 그대의 향기로운 제단 앞에 무릎을 꿇는구나…”

대상을 관찰하는 집요한 태도와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탁월한 감각은 과학자와 작가 모두에게서 발견된다. 앙리 파브르의 <곤충기>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듯 현장감이 살아 있고, 피터 앳킨스는 <다시 생각하는 창조>에서 시의적절한 비유로 생동감을 더했다. 존 스타인벡이 남긴 해삼 묘사에는 관찰자의 오감이 그대로 담겨 있으며, 이탈로 칼비노가 소설 <팔로마 씨>에 삽입한 도마뱀붙이 관찰기에는 게코의 움직임이 섬뜩할 정도로 꼼꼼히 기록되어 있다.

작가나 예술가가 취미 이상으로 과학에 관여했던 사례도 여럿 등장한다.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나비 연구로 유명한데, ‘곤충학자’라는 학술지에 자신의 연구 결과를 보낼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1911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벨기에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는 벌들의 생태를 자세히 기록한 <벌의 일생>을 남겼다. ‘환상교향곡’을 작곡한 엑토르 베를 리오즈는 의대에 다닌 적이 있으며, 천왕성을 발견한 윌리엄 허셜은 작곡가이자 오르간 연주자였다.

존 캐리는 고급문화 비판과 반 엘리트주의적 행보를 이어왔다. 그 일환일까. 패러데이 등 가정환경이 거론된 과학자 대부분은 평범하거나 다소 열악한 처지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다. ‘흙수저’ 논란으로 편치 않은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존 캐리가 고른 과학고전들은 주옥같지만, 원전 중 매우 적은 분량만을 담았기 때문에 매 편마다 아쉬움이 남는다. 원전을 찾아 읽는 것이 갈증을 달래는 가장 좋은 길이겠지만, 그 사이를 연결하는 책을 거쳐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과학고전선집: 코페르니쿠스에서 뉴턴까지>는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펴낸 기초교양교육 총서 중 다섯 번째 책으로, 존 캐리의 출발점과 비슷한 16세기 과학혁명 태동기를 기점으로 이후 약 1세기 동안 출간됐던 주요과학 고전을 발췌·수록했다.

<지식의 원전>에서는 코페르니쿠스의 저작을 따로 소개하지 않고 베살리우스와 같은 시대 인물로 짧게 언급한 반면, 이 책에는 첫 번째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실려 있다. 이어지는 갈릴레이의 <대화>, <새로운 두 과학>은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경험적 증거와 수학의 논리로 뒷받침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차례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다. 근대 우주관의 핵심과 변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메르센의 <과학의 진리>, 데카르트의 <방법서설과 광학, 기상학, 기하학> 등은 과학혁명 시기의 대표 저작이라 할 만한데 존 캐리의 목록에는 빠져 있다. <지식의 원전>과 함께 읽으며 보완하면 좋을 듯하다. 기존 국역본이 있는 경우 해당 역서와 원전 대조 작업을 거쳐 실었다고 한다. 데카르트의 <광학>처럼 아직 한국어판이 발간되지 않은 책도 포함되어 있다. 원전으로 향한 든든한 징검다리다.

※ 껴울리다는 공명(共鳴)하다는 뜻입니다.

한겨레교육 강사/<통합 논술 교과서>·<유형별 논술 교과서> 공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