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 별 하나에 동경 /별 하나에 시와 / 별 하나에 어머니 / 당신의 시처럼 /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길 / 당신의 삶처럼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할 수 있길 / 때론 사는 게 허무하고 무기력 할 때 / 당신의 육첩방을 밝혔던 등불을 기억할게 / 난 왜 느끼지 못하고 외우려했을까 / 용기내지 못하고 / 뒤로 숨으려 했을까 / 그에게 총칼 대신 연필 끝에 힘이 있었기에 / 차가운 창살 건너편의 하늘과 별을 바라봐야했네 / 나의 이름 나의 나라가 / 부끄럽지 않게 오늘도 나아가야지 / 흙으로 덮여지지 않게.

얼마 전 엠비시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래퍼 개코와 황광희가 부른 <당신의 밤>이라는 제목의 일부 가사입니다. 윤동주(1917~1945) 시인의 시<서시>와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 세 편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사 내용은 먼저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하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던 시인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로서 시인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한 점을 부끄럽게 여기고, 앞으로 적극적으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방송이 나간 후 많은 칭찬과 감동의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 <랩으로 인문학 하기>에서 저자는 랩은 문학이고 래퍼는 작가라고 말합니다. 래퍼는 오래전 장터에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던 이야기꾼이나 시를 읊고 다녔던 시인처럼 목소리를 연주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래퍼는 슬픈 문장에는 목소리에 살짝 물기를 뿌렸다가 즐거운 문장에는 미소의 양념을 뿌립니다. 때로는 무덤덤하고 건조한 목소리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랩은 하고 싶은 말에 장단을 실어 상대방의 귀를 끌어당기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말의 기술이자 표현이다.”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랩은 주로 자신이 겪은 이야기나 주장하고 싶은 것을 가사로 만듭니다. 그래서 한 편의 수필이거나 연설문이 되기도 합니다. 미국의 래퍼 에미넴(Eminem)은 흑인들로부터 극찬을 받은 최초의 백인 래퍼인데, 불안한 환경에서 성장한 자신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랩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셰이머스 히니는 에미넴의 에너지 넘치는 가사가 통기타 가수 밥 딜런(Bob Dylan)의 작품에 못지않다는 찬사를 보냈다고 합니다.

밥 딜런은 지난 해 노벨문학상을 받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사람이지요. 사상 최초로 가수가 노벨문학상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통기타를 둘러메고 서정적인 노래를 부르는 밥 딜런을 사람들은 ‘음유시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밥 딜런이 “위대한 미국 노래의 전통 속에서 참신한 시적 표현을 만들어냈다.” “고대 그리스 시(詩)와 다를 게 없다.” “밥 딜런은 귀를 위한 시를 쓴다”고 수상 이유를 말했습니다. 밥 딜런을 음유시인이라고 부르듯이 래퍼도 시인일 수 있습니다. 시 못지않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가사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무엇보다 랩이 문학 중에서도 시와 견주게 된 이유는 시에서 쓰이는 운율 기법이 랩에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랩이란 끄덕이는 긍정이다

소설 <레미제라블>이 프랑스 혁명기의 시대상과 정신을 표현했듯이 랩도 그 시대의 모습과 이상을 표현합니다. 캐나다에는 ‘케이난’이라는 독특한 래퍼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소말리아 말로 ‘여행자’라는 뜻입니다. 무정부 혼란에 해적들이 득실대는 나라로 알려진 소말리아, 그곳이 케이난의 고향입니다. 그는 친구들의 죽음을 목격하고 13살이 되던 해 가족과 함께 소말리아를 떠나 캐나다에 정착했지요. 그는 소말리아 전통 음악을 랩에 섞어 넣고 영어와 소말리아 어 두 가지로 랩을 구사합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랩에 담았지만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케이난은 단순히 한 개인이 아닙니다. 그의 랩 소절이 사람들을 소말리아로 초대하고 고통받는 소말리아에 대해 생각하게 하니까요. 우리나라도 1990년대 서태지가 <교실이데아>에서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라는 가사로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요.

국회의원에 도전한 래퍼도 있습니다. 래퍼 김디지는 2008년 서울 강남구 국회의원 기호8번으로 출마했습니다. 그는 1톤 트럭을 무대로 만들어 그 위에서 랩으로 유세를 했지요. 그가 부른 랩 가사의 일부입니다. “빈민보단 부유층의 기득권이 우선/사회문제 정책보단 비자금을 조성/그것만이 지금 이곳 정치꾼들의 위선/개그보다 더 웃긴 건 국회를 향한 시선/집값 오르고 세금 오르고 내 월급만 안 오르고/ 불평불만 늘어놔도 우린 얘긴 듣지 않고/유리 지갑 회사원의 지갑 갈수록 얇아지고.”

관심과 조롱 속에서 투표함이 열렸고,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그의 득표수는 총 1782표로 일곱 후보 중 4위였고, 수도권 무소속 후보 중 3위였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학교 수업에 힙합 과목을 만들어 래퍼들의 일자리 창출!” 이런 걸 말하지 않았습니다. 관용차 2000cc 이하 사용 의무화, 국회의원을 위한 예산 4000억 삭감으로 결식아동 지원 등이 그의 주된 공약이었어요.

사회의 편견에 도전장을 내민 랩도 있습니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잘 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그러나 주위 사람 내가 밥 먹을 때/한마디씩 하죠 너 밥상에 불만 있냐.” 디제이 디오시의 <디오시와 춤> 가사 일부입니다. 또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래퍼 윤미래는 <검은 행복>이라는 랩에 서 “내 poppy는 흑인 미군/여기저기 수군대 또 이러쿵저러쿵/내 눈가에는 항상 눈물이 고여/어렸지만 엄마의 슬픔이 보여/모든 게 나 때문인 것 같은 죄책에/하루에 수십 번도 넘게/난 내 얼굴을 씻어 내.”라는 가사로 차별의 아픔을 토로했지요. 그런가 하면 래퍼 MC 스나이퍼는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에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랩으로 되살렸습니다. “인간으로서 요구할 수 있는 최소의 요구/자식 부모 남편이길 버리고 죽음으로 맞선/이들에겐 너무도 절실했던 바램 하지만/무자비한 구타와 연행으로 사태를 수습한.”

래퍼에겐 디스보다 피스가 더 잘 어울린다

랩은 이렇듯 역사, 자유, 인권, 환경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스토리텔러입니다. 그런데 가끔 심하게 공격적인 표현으로 논란이 되기도 하지요. 이런 랩을 디스랩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디스란 존중을 뜻하는 영어 ‘respect’의 반대말 ‘disrespect’의 줄임말입니다. 디스는 시빗거리가 생긴 누군가를 폄하하며 창피를 주려고 하는 말과 행동입니다. 예를 들어 “미팅에 나온 여자들은 나의 강아지, 싫증나면 난 차버리지.”와 같은 문장은 여성과 동물을 비하하는 폭력성이 담겨 있어 디스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래퍼에게는 디스보다는 피스(peace)가 더 잘 어울린다고 말하면서, 래퍼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자세로 가사를 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랩의 역사에서부터 랩을 잘하기 위한 방법들, 그리고 랩이 품고 있는 다양한 인문정신을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특히 저자의 성장 스토리도 담고 있습니다. 한때 사회적 기업 ‘아름다운 가게’에서 일하면서 거리의 래퍼였던 저자는 현재 전국을 다니며 대중음악을 매개로 청소년들과 소통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책 뒤에는 ‘낭독의 두드림’이라는 랩 수업에 참여한 청소년들의 랩 가사 15편이 수록되어 있어서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해들을 수 있습니다. 저자가 2016년에 펴낸 <십대처럼 들어라>도 대중음악을 매개로 청소년과 소통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독서교육전문가, (주)리딩웰 대표, 가톨릭대 교육대학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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