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화 <명량>이 인기를 끈 이유는?
우리나라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것 으로 알려진 <명량>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요? 다 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를 ‘시대성’이 라고 봅니다. <명량>은 2014년 7월에 개봉되었습 니다. 유가족은 물론 온 국민의 가슴에 깊은 상처 를 남긴 세월호 사고가 난 지 3개월 후였습니다. 사 람들은 승객들을 버리고 도망친 선장에게 분노 했고 조직 안에서 눈치나 보고 자기 안위만 살피 는 관료들에게 실망했습니다. 그러면서 위기의 순 간에 자신을 던져 생명을 구한 영웅, 강력한 리더십 을 원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순신 장군 같은 사람 말 입니다. 

영화감독을 직접 만나보지는 않았지만, 영화감독 이나 제작자가 영화를 만들 때 던지는 질문은 “현 재 대중들이 가장 바라는 영화는 무엇일까?”일 것 입니다. “왜 지금 이 영화인가?”라는 당위성을 만들 어 내야 흥행에 성공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영화 나 드라마 같은 매체를 만드는 사람들은 시대가 요 구하는 것을 읽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명량> 은 시대의 필요를 읽어낼 줄 알았습니다. 영화감독 은 슬픔과 분노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역 사 속 영웅을 모셔왔습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한 편의 영화가 시대 안에 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읽어낼 줄 알아 야 합니다. 즉 ‘맥락’을 읽어내야 합니다. 이것을 컨텍 스트(context)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영화를 볼 때 에는 영화의 내용 측면만 볼 게 아니라 왜 그 영화 가 흥행을 하게 되었는지를 사회적인 상황에서 고 려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만약 방송국에서 <정도전>이라는 드라마를 만 든다면 그것은 분명 제작자의 의도가 담겨 있습니 다. 영화 <명량>이 세월호 이후 강력한 리더십의 요 구에 부응한 것처럼 정도전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킬 만한 ‘맥락’이 있다는 뜻입니다. 다 알다시피 조선왕 조를 세우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던 정도전은 고려 왕조 입장에서는 배신자입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서 역사적 평가가 다른 인물입니다. 이런 인물을 드 라마로 만들 때에는 분명히 그 인물을 다루고 싶 은 이유가 있게 마련입니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이유입니다. 정도 전을 개인의 야망을 위해 고려 왕조를 배신한 사 람, 즉 성공지향의 자기계발적 인물로 그려내느 냐, 아니면 낡은 시대를 바꾼 개혁적 인물로 그려 내느냐는 제작자의 정치적 이유에 따라 결정됩 니다. 결국 제작자의 의도(이념)가 그 작품의 주제 가 되는 것입니다. <명량>이 애국심이나 전쟁보다 리 더십에 초점을 두었던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영화 <설국열차>가 말하는 정의는?
영화 <명량>이 많은 사람들에게 참된 리더십이란 어 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 강한 인상을 남겼 듯이 때로는 한 편의 영화가 세상을 뒤흔들어 놓기 도 합니다.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의도가 잘 전 달되었을 때는 그 힘이 배가 됩니다. 제작자의 의도 를 알려면 영화를 읽을 줄 아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영화를 단순히 오락으로만 볼 게 아니라 책이 나 그림처럼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래서 캐나다, 영국, 스웨덴 등 여러 나라들은 영화 를 중요하게 가르쳐야 할 미디어 과목으로 선정하 여 학교에서 ‘영화읽기’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 <인성, 영화로 배우다>는 영화 읽기에 도움을 주려고 쓴 책입니다. 세 명의 저자 들은 오랫동안 신문사에서 영화를 소개하고 있 는 기자이거나 영화평론가로 활동한 사람들입니 다.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인문학적 교양을 심어 줄 수 있는 영화 12편을 공감, 감사, 나눔, 자기조 절, 소통, 정직, 책임, 정의, 자기존중, 인권존중, 시민 성, 타문화 이해 등의 주제로 나누어 안내하고 있습 니다. 12편 영화 가운데 ‘정의’라는 주제를 달고 있 는 <설국열차>를 중심으로 저자들의 생각을 펼쳐보 겠습니다.

<설국열차>는 봉준호 감독이 2013년에 발표한 작 품으로 15세 이상 관람 가능한 영화입니다. 기상 이 변으로 모든 게 꽁꽁 얼어버린 지구, 살아남은 사람 들을 태운 기차 한 대가 끝없이 궤도를 달립니다. 기 차 칸은 빈민굴 같은 맨 뒤쪽의 꼬리 칸에서부터 호 화로운 객실의 앞쪽 칸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칸 으로 계급화 되어 있습니다. 기차가 달린 지 17년 째, 꼬리 칸의 사람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마침내 반 란 주동자 커티스는 맨 앞 칸까지 진출하여 지도 자 월포드를 만납니다. 

이 영화에서 꼬리 칸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킨 이 유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비참한 의식주 생 활을 합니다. 기차 안의 자원 배분이 제대로 되지 않 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꼬리 칸 사람들은 음식 이나 잠자리 같은 자원을 배분하는 데 어떤 의견 도 낼 수 없는 처지입니다. 열차 속 권력자들이 정 한 대로 일방적으로 따라야 했으니까요. 열차의 지 배자들도 꼬리 칸 사람들이 뽑지 않았습니다. 꼬 리 칸 사람들은 열차가 어떻게 움직이고 운영되 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가끔 총리라는 지도 자가 와서 “모든 사람에겐 제자리가 있다. 각자 주 어진 위치를 지켜야 질서와 균형이 유지되고 인류 가 생존할 수 있다.”고 늘어놓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모든 진실로부터 철저히 배 제되었지요. 다시 말해 꼬리 칸 사람들은 자 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주어지 지 않았습니다. 민주적인 정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지요. 영화 속 기차는 정의가 구현되 지 않은 사회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는 20년 후라는 가까운 미래를 다루고 있지 만, 영화 속 불공평한 모습은 지금의 사회 현실 을 보여줍니다. 부의 양극화가 심해진 지금의 자본 주의 체제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세 계 최강의 나라라고 하는 미국에서 다섯 명 아 이 중 한 명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으며 상위계층 1 퍼센트가 사회 전체 부의 43퍼센트를 소유하고 있 습니다. 부자들은 더욱 많이 갖게 되고 가난한 사 람들은 더욱 가난해지는 현실, 빈익빈 부익부 현상 은 영화 얘기가 아니라 현실의 모습입니다.

이런 영화가 나오게 된 배경, 영화 제작자의 의 도 및 사회적 맥락을 찾아볼까요. 이 영화가 나오기 전 2008년, 미국은 국가 부도에 버금가는 금융 위기를 겪었고, 2011년 미국 뉴욕 금융가 거리에서 는 수많은 시민들이 “분노하라!” “월스트리트를 점 령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은행 이나 증권사 등 금융회사들의 잘못된 투자와 자금 운용으로 많은 개인과 기업이 파산했는데, 정작 파 산의 책임자인 금융회사들은 막대한 수익과 보너스 를 챙기며 돈 잔치를 벌인 데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영화가 지구온난화로 인해 얼어붙은 지구를 배 경으로 하고 있는 점도 생각할 여지를 던져주고 있 습니다. 이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하느라 지구 환 경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강대국들의 이기심을 꼬 집고 다가올 재앙을 경고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 다. 영화 속 꼬리 칸 사람들이 목숨을 건 반란을 일 으키지 않고 기차 안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 엇일까요? 그것은 열차가 처한 현실을 모두에게 공 개하고 민주적 절차와 합의에 따라 열차 안의 자원 을 배분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이 바로 정치를 통 한 정의의 실현이겠지요. 

그런데 영화 결말에서 열차가 폭발한 후 두 아이 가 밖으로 나간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일정한 궤 도를 돌고 있는 기차가 자본주의 체제를 상징한다 면, 기차 밖으로 나가는 것은 자본주의가 갖고 있 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체제 밖으로 나가야 한다 는 뜻이 아닐까요. 북극곰을 만난 것은 지구에 다 시 생명체가 나타났다는 희망의 상징일 수도 있 을 것입니다. 
 
독서교육전문가, (주)리딩웰 대표, 가톨릭대 교육대학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