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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2월 28일
[32. 단순한 기쁨 <마지막회>]

이 책, 알고보면 재미있다!

<단순한 기쁨> 피에르 신부 지음, 백선희 옮김/마음산책

작가
1912년 프랑스 리옹의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9세에 모든 유산을 포기하고 카푸친 수도회에 들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레지스탕스의 투사였으며, 전쟁 후에는 잠시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49년부터 ‘엠마우스’라는 빈민구호 공동체를 만들어 평생을 집 없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했다. 엠마우스에는 현재 전 세계 44개국 350여 개의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그의 일생을 다룬 영화 <겨울 54>는 1989년 세자르 영화상을 수상했는데, 집 없는 사람들, 실업 문제를 사회적인 이슈로 끌어들이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2007년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 <이웃의 가난은 나의 수치입니다>가 있다. 
 
내용
이 책은 피에르 신부가 90세 때 펴낸 자전적 에세이다. 그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어느 날 자살 충동에 사로잡힌 한 사람이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물어왔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피에르 신부는 자기 삶의 핵심이 무엇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일종의 고백성사와 같은 책이기도 하다. 

그는 신앙심 깊은 상류층 가정에서 성장했다. 부유한 신사였던 아버지는 일요일 아침마다 변두리의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을 돕곤 하였는데, 한번은 그들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다가 욕설을 들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얘들아, 불행한 사람들을 보살필 자격을 갖추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보았지?”하고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한 말과 행동은 어린 피에르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자신이 일생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데 바치게 된 것도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 때문이라고 그는 고백한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피에르는 많은 책을 읽고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로마로 수학여행을 다녀오는 길에 성 프란체스코가 살았던 아시시의 수도원에 들렀고, 그때부터 수도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결국 그는 아주 엄격하고 엄숙한 전통적인 수도원 분위기에 매료되어 19살에 수도회에 들어갔으며, 곧 신부가 되었다. 

2차대전이 발발한 후 레지스탕스에 가담해 나치의 박해를 받는 유대인들을 숨겨주고 도피시키는 일을 한 그는 그때부터 ‘피에르 신부’라고 불리게 되었다. 레지스탕스로 활동할 때 그가 쓰던 암호명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쟁 후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엠마우스’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엠마우스 사람들은 헌 종이나 고철 등을 주워다 팔아서 집 지을 돈을 마련했다. 엠마우스는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땀과 노동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음식과 물건이 생기면 똑같이 나누며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공동체이다. 

피에르 신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일했으며 사회 부조리에 대해 날카롭게 비평했다. 그래서 그는 금세기 프랑스가 낳은 세계 최고의 휴머니스트, 또는 프랑스의 양심을 대변하는 사람이라고 불리고 있다.
 
* 깊이 생각하기
 
프랑스인들은 매년 설문 조사를 통해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인’을 뽑아 순위를 매기곤 하는데, 피에르 신부가 8년 동안 7번이나 1위에 오른 걸 보면 그가 얼마나 프랑스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954년에 일어난 사건 때문이었다. 한 여인이 집세를 내지 못해 쫓겨난 후 추위에 떨다가 길거리에서 죽은 사건이 일어나자 피에르 신부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숨진 여인의 죽음이 보여주는 의미를 외면하지 말라. 권력은 눈이 멀었고, 가난한 자들은 침묵한다.”며 절규했다. 

1994년에는 무주택자들과 함께 파리의 5층짜리 빈 건물 한 채를 무단 점거하기도 했다. 그는 집 없는 사람이 80만 명에 이르는데 빈 집은 200만 채나 되는 모순이 어디 있느냐고 소리쳤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사회적 존경을 받고 있는 피에르 신부의 이런 행동을 정치인들은 무시할 수 없었고, 결국 이로 인해 2년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아파트에 대해 중과세를 부과하는 법이 만들어졌으며 세입자들이 월세를 내지 못하더라도 강제로 퇴거시키지 못한다는 법이 통과됐다. 그때 피에르 신부는 여든을 넘긴 나이였다.

“왜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는 걸까요?” 하고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피에르 신부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지요.”라고 대답한다. 그는 하느님을 믿는 신자와 믿지 않는 비신자들 간에는 근본적인 구분이 없다고 단언한다. 오직 ‘자신을 숭배하는 자’와 ‘타인과 공감하는 자’ 사이의 구분이 있을 뿐이며, 타인의 고통 앞에서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과 타인들을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 사이의 구분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 간의 구분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한번은 엠마우스 공동체에서 일하는 한 사람이 “하느님이 뭡니까?”라고 물었다. 그때 피에르 신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노인들을 위한 집을 마련하느라 하루 종일 다락방을 수리하고 돌아오면서 당신은 ‘신부님, 오늘 하루가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지금 하느님이 누구냐고 묻는단 말입니까? 그때 당신이 느꼈던 기쁨을, 다른 기쁨과는 너무도 다른 그 기쁨을 잊지 마시오. 그 기쁨 안에서 당신은 하느님을 맛본 것입니다.”

피에르 신부는 한평생을 세상의 빈곤과 불평등과 불의에 맞서 싸운 투사였다. 그는 일부 배부른 교회와 사치스런 성직자들을 과감히 질타하고 때로는 법을 어기면서까지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섰다. 그는 인종차별주의와 외국인 혐오증, 굶주린 아이들을 볼 때, 잠잘 곳 없는 가족들을 볼 때,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희망을 잃을 때, 우리 모두는 분개할 줄 알아야 한다고 소리쳤다. 강자들이 약자들을 짓밟는 걸 두고 보거나 고통 받는 약자들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은 곧 공범자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샤르트르가 ‘타인은 지옥이다.’고 한 것에 대해 그는 ‘타인 없는 나’야말로 지옥이라고 말한다. 즉, 타인과 단절된 자기 자신이야말로 지옥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타인 없이 나 혼자 행복할 것인가? 타인과 더불어 행복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내려야 할 근본적인 선택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인간은 이미 자기 자신의 심판관이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의 행적, 다시 말해 우리의 행위가 우리 자신의 심판관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이나 상상이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며 살았던 피에르 신부는 유언도 특별했다. “내 무덤에는 꽃이나 화환 대신 수천 명의 무주택 가족과 아이들의 명단을 가져다 달라. 꽃 살 돈으로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