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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카톡 대화명이 ‘죽고 싶다’로 바뀌었어요
[한겨레]
우리 아이 카톡 대화명이 ‘죽고 싶다’로 바뀌었어요
유행처럼 번지는 십대 자해 현상

신드롬처럼 확산하는 청소년 자해
온라인 계정 등 게시물만 3만건 넘어
‘자해계’ 따로 만든 뒤 상처난 몸 ‘인증’
지난 7월엔 정신과 의사가 국민청원도
청소년 자살률 1위·행복지수 꼴찌 오명
“따뜻하게 곁 내주는 어른이 필요해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상담교사 등 전문가들은 부모가 아이의 자해 흔적을 발견했을 때 죄책감, 수치심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의 ’자해 횟수’나 방법에 초점 맞추어 다그치기보다는, 시간과 마음을 내주고 상담·진료 등 최선의 방법을 찾도록 도와야 한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왜 하지 말라는 건데요? 자해하는 게 왜 나빠요? 제가 정말 죽을 거 같아서,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살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다른 방법이 없는데 이것까지 하지 말라고 하면….”

지난 9월8일 오후 2시, 서울 한 카페에서 만난 자해 경험 청소년의 말이다. 서울 소재 중학교 3학년인 ㅈ양은 ‘자해 인증용’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따로 가지고 있다. 이를 ‘자해계’(자해용 계정)라 한다. 주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팔에 피가 맺힌 사진, 의미 없이 손바닥에 상처를 낸 사진 등을 올린다고 했다.

사진을 올린 뒤 ‘#자살’, ‘#자해흉터’,‘#자해중독’, ‘#자해충동’, ‘#자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와 같은 해시태그도 단다. 이런 자해 인증샷은 ‘좋아요’도 제법 받는다. 해시태그를 검색해 들어온 익명의 또래들이 눌러주기도 하고, 친한 친구들끼리 ‘(너의 행동을) 걱정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뜻으로도 ‘좋아요’를 누른다고 했다. ㅈ양은 “마음이 힘들어서 하는 거다. 어른들이 우리 기분을 알면, 자해하지 말라고 혼내지 못할 것”이라며 “몸에 상처가 늘어나거나 피가 나면 후련하다. 사진을 올렸을 때 누군가 걱정하는 댓글을 남겨주면 위로가 되기도 한다”라고 했다. “한번 해본 애들이 두 번 안 하지는 않을 걸요? 다들 자해에 호기심 있어 해요. 학교·학원 다녀와 집에 들어가면 답답해지거든요.”


부쩍 늘어난 청소년 연극은 왕따, 자살, 세월호 참사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다뤄 사회극적 성격을 지닌다. 사진은 국립극단의 ‘비행소년KW4839’ 공연 모습. 국립극단 제공유행처럼 번지는 자해, 국민청원에도 등장

청소년들의 자해가 ‘십대 문화’처럼 퍼지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자해’를 검색하면, 3만2556개의 게시물이 연달아 뜬다. 지난 14일 기준으로 ‘#자해흉터’ 관련 게시물만 1500여개에 달한다. 지난 9월10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에 맞춰 진행한 생명존중 교육, 자살예방 특강이 무색하게 아이들은 더 자극적인 자해 사진에 더 많은 ‘좋아요’를 보내고 있었다. 

급기야 지난 7월23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소년의 자해 전파, 자해 확산을 막아주세요’라는 청원도 올라왔다. 인스타그램, 트위터, 구글 등에 노출되는 자해 이미지 검색을 막아달라는 것이다. 청원에 동의한 사람이 한 달 만에 3200명을 넘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라고 밝힌 글쓴이는 “청소년 자해 게시물 등이 우리 과에서 진료하는 비자살성 자해 질환의 수준을 넘어섰다. 하나의 문화 신드롬처럼 전파되는 것 같은 우려가 들어 청원한다”며 “자해 청소년들의 수가 2018년 1학기부터 늘기 시작해, 여름에 더 많이 발견되고 더 많이 자해하는 문화가 전파됐다. 학교 현장 교사들 말로는 한 반에 하나둘은 꼭 있다고 한다”고 강조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여러 종류의 자해를 한 청소년을 진료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 십대들의 비관, 부정, 자기혐오 정서에 기초한 자해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가 펴낸 ‘2018 자살예방백서’를 보면, 한국 십대들의 자살률은 십대 인구 십만명당 2015년 4.2명에서 2016년 4.9명으로 전년보다 0.7명 늘었다. 2011년 뒤부터 다른 연령대의 자살률은 조금씩 줄어드는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우리나라 청소년 4명 가운데 1명은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우울증이 깊다. 여학생의 경우 30.5%, 남학생은 20.9%가 우울감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10~19살 청소년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이다.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한국 청소년들의 자살률은 단연 1위, 행복지수는 ‘만년 꼴찌’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아이들은 왜 자해를 하고 ‘인증’하는 것일까?

먼저 자해(自害)는 자신의 신체에 의식적으로 해를 입히는 행위를 말한다. 스스로에게 상처를 가한다는 점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본인’이다. <자해 청소년을 돕는 방법>(그물코)을 번역한 안병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수원시자살예방센터장)는 “자해는 자살과는 다르다. 십대들의 우울증, 불안증, 경계선 인격 장애 등이 자해 행동의 원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십대들의 자해 행동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전문가들은 그 가운데 첫 번째로 ‘힘든 현재 상황을 가족, 친구 등 주변인들에게 알리고 싶은 신호일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유길상 성모사랑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받아들이기 힘든 분노 때문에 자신의 신체에 상처를 내 화를 표출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또한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경우 지나친 죄책감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자기 처벌의 상징으로 자해를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학교와 학원 오가며 숙제하고, 시험 치르고, 아이들이 함께 얼굴 마주하고 정 나눌 시간이 없지요. 우울과 불안, 짜증 등 부정적인 감정이 누적?반복되면 불안감이 증가합니다. 이때 ‘자해’가 그 불안감을 해소하는 분출구 구실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두산아트센터의 청소년극 ‘복도에서, 미(美)성년으로 간다'. 두산아트센터 제공부모들은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자해의 원인은 다양하다. 아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거나 인정받기 위해 자해를 하기도 한다. ‘어차피 죽으면 끝나는 게 인생’이라는 식의 자포자기나 분노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거나, 자신이 인간으로서 무가치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자해를 하기도 한다.

수도권 소재 고교 2학년 ㅇ군은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담임교사에게 ‘아웃팅’(outing,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 당했다. 그 뒤 친구들에게 ‘호모 새끼’ 등의 혐오?차별 발언을 듣는 건 물론 학교 안팎에서 지속되는 괴롭힘 때문에 마음 둘 곳이 없어졌다”고 했다. “부모님에게 얘기해봤자 ‘네가 잘못된 거다’라며 제 편을 안 들어주시더라고요. 유일하게 숨통 트이는 곳이 온라인 세상인데, 여기에 고민도 올리고, 자해 사진을 올리면 ‘힘내라’는 메시지를 받아요. 오프라인에는 믿을 만한 사람들이 없는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청소년들이 정서적 긴장이나 신체적 불편, 고통, 낮은 자존심 등을 자해 행동을 통해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유근영 서부위(Wee)센터 전문상담교사는 “자해를 한 뒤 마치 압력 밥솥에서 ‘김’이 빠져나가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상처, 분노, 두려움, 불안, 미움 등을 더욱 강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자해는 결코 긍정적인 감정 표현, 해소의 방법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유 교사는 “청소년 시기는 인격과 성격이 만들어지는 때다. 본인의 감정을 적절한 방법과 방식으로 표출해내기 힘들 수 있다”며 “자해는 시간이 지날수록 습관적이고 만성적인 특징을 보이기 때문에 부모가 반드시 개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단은 자해를 한 이유를 조심스레 물어보세요. 아이가 최근 겪고 있는 어려움을 말로 하기 힘들다 하면 글로 써서 달라고 해도 좋습니다. 선입견 없이 차분하게, 신뢰를 주는 부모의 자세로 옆에 서 있어줘야 해요. 자해에 의한 상처를 감추려고 어색하게 행동한다거나, 갑작스럽게 생긴 상처 등이 없는지 관심 가질 필요도 있습니다.”

시간과 마음을 들여 십대들을 품어야

현재 비수도권의 한 지역사회에서 청소년상담가로 일하는 30대 최아무개씨도 자해 경험이 있다. 20년이 지났지만 몸 곳곳에 새겨진 흔적들은 지워지지 않는다. ‘업보’라 생각하고 지역에서 위기 청소년들을 도우며 살고 있다.

최씨는 “그때 나 역시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아 스스로를 괴롭혔고, 자해 상처들을 보며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복수한다’는 느낌을 가졌다. 하지만 내가 10대 때, 각 지역마다 청소년 상담센터들을 활용하고 또 도움 받을 수 있었다면 자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공교육 12년, 따돌림과 차별, 폭력을 당해도 쉬쉬하며 넘어가는 일부 학교 관리자들의 모습이 안타깝다고도 강조했다. “제가 중·고교 다닐 때보다 요즘 청소년 문화가 더욱 삭막해진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괜찮니?’라고 먼저 물어봐주세요. 휴대폰 화면이 아닌 사람의 눈과 마음에 답이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게 어른들이 해야할 일이지요.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내주어야 합니다. 답이 오면, 귀 기울여 청소년들의 말을 들어주세요.” 

김지윤 <함께하는 교육> 기자 kimjy13@hanedui.com